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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를 들었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대법원이 본 정당행위의 '전체 그림'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었더니,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가족에게 폭로한 조카를 찾아온 삼촌이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같이 살던 이모가 달려와 둘을 떼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떨어져 있던 사이, 삼촌은 거실 서랍장에서 서랍 두 개를 꺼내 조카에게 던졌습니다. 가로 43cm, 세로 37cm의 나무 서랍이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맞은 조카는 3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해를 입었습니다. 삼촌은 다시 다가와 얼굴을 세 번 더 때렸고, 이번에는 식탁 위의 가위를 집어 들었습니다. 날 길이 14cm. 가위 날 끝을 손으로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까 너 죽이고 나 죽으면 된다."

조카는 싱크대 위의 부엌칼을 들었습니다. 날 길이 25cm. 그리고 삼촌을 향해 소리치며 대치했습니다. 동시에 직접 112에 신고했습니다. 삼촌이 가위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에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칼을 든 채 부엌에 서 있었습니다.

기소된 사람은 조카였습니다. 죄명은 특수협박.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사람을 협박했다는 것입니다. 1심과 2심은 모두 유죄로 판단했습니다(보도된 형량은 벌금 3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 그러나 대법원은 2026년 6월, 이 판결을 파기했습니다(대법원 2026. 6. 25. 선고 2024도12616 판결).

1. '정당방위'가 아니라 '정당행위'입니다

먼저 용어를 정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건을 두고 우리는 흔히 '정당방위'라고 부르지만, 대법원이 적용한 조항은 형법 제21조 정당방위가 아니라 제20조 정당행위였습니다. 정당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를 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왜 정당방위가 아닐까요. 이 사건에는 서로 주먹을 주고받은 국면이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맞은 조카도 삼촌의 얼굴을 때리고 멱살을 잡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공격할 의사로 싸운 경우, 그 행위는 방어이면서 동시에 공격의 성질을 가지므로 정당방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실무에서 쌍방폭행이 정당방위로 인정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남는 길이 정당행위입니다. 그리고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판례가 요구하는 다섯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①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②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③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균형성, ④ 긴급성, ⑤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입니다.

2. 이 판결의 핵심 ― 칼을 든 '그 순간'만 떼어 보지 말라

다섯 요건을 놓고 '칼을 들어 위협한 행위'만 따로 심사하면 결론은 뻔합니다. 날 25cm 부엌칼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협박은 상대의 공포를 노린 것이니 수단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원심이 유죄로 본 것도 이런 접근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접근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다섯 요건은 각각 넘어야 할 관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동기', '수단', '법익균형', '긴급성', '보충성'은 불가분적으로 연관되어 하나의 행위를 이루는 요소들로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부엌칼을 든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에 비추어 부정적인 평가가 가능하지만, 정당행위 해당 여부는 그 행위에 이르게 된 일련의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므로, 그런 부정적인 사정만으로 정당행위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행위를 규정한 입법 취지와 사회상규의 의미에 배치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실무적으로 이 문장은 무겁습니다. 수사와 재판에서 방어행위는 늘 가장 격렬했던 한 장면으로 잘려 나와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조서에 남는 것은 "부엌칼을 들고 위협했다"이고, 그 앞의 서랍과 주먹과 가위는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대법원은 그 순서를 되돌려 놓았습니다.

3. 긴급성과 보충성은 독립된 관문이 아닙니다

실무에서 정당행위 주장이 가장 자주 깨지는 지점이 ⑤ 보충성입니다. "칼을 들지 않고 집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경찰이 올 때까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글 수 있었다" ― 이런 식으로 다른 수단이 하나라도 상상 가능하면 보충성이 부정되곤 합니다.

대법원은 그 기준을 명확히 좁혔습니다.

행위의 긴급성과 보충성은 다른 실효성 있는 적법한 수단이 없는 경우를 의미하고 '일체의 법률적인 적법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적극적·독립적·완결적인 요건으로까지 요구할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다른 수단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보충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법리는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도16527 판결과 대법원 2023. 5. 18. 선고 2017도2760 판결로 이어져 온 흐름을 이번 사건에 적용한 것입니다.

4. 대법원이 실제로 본 정황 ― 다섯 가지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는 무엇이 결론을 갈랐을까요. 대법원이 짚은 정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당사자의 대비 ― 39세 여성이 퇴근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일방적으로 찾아온 76세 남성의 갑작스러운 폭력에 맞닥뜨렸습니다. 상당히 놀라고 위협을 느꼈을 상황입니다.
  • 중단 이후의 일방적 폭력 ― 이모의 개입으로 싸움이 멈춘 뒤에 삼촌이 서랍을 던지고 얼굴을 다시 때렸습니다. 이 국면에서 조카는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이었다는 뜻입니다.
  • 추가 공격의 예상 가능성 ― 이미 몇 차례 공격을 받은 상태에서, 화가 난 상대가 사용 방법에 따라 흉기가 될 수 있는 가위를 들고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그 위협이 추가 가해 없이 끝나리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피해의 크기가 뒤집혀 있다 ― 조카의 행위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가볍고, 실제 다친 정도는 조카가 더 중했습니다. 법익균형성이 인정된 근거입니다.
  • 112 신고와 그 이후의 태도 ― 조카는 직접 신고해 수사기관에 분쟁 해결을 요청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칼을 든 채 부엌에 있었을 뿐 추가 위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이 정황을 종합해, 조카의 행위를 "예고 없이 집에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가위를 들어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피해자의 계속되는 부당한 공격에 맞서 수동적, 소극적 차원에서 행한 행위"로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수동적·소극적'이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부당한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이 새로운 적극적 공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사회통념상 허용될 상당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 1987. 10. 26. 선고 87도464 판결 이래 이어져 온 판단 방식입니다.

5.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 ― "칼을 들어도 된다"는 판결이 아닙니다

이 판결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정당행위라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은 그 행위가 적극적으로 용인, 권장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상황하에서 그 행위가 범죄행위로서 처벌대상이 될 정도의 위법성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조카가 잘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그 행위를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이 판결을 "폭행당하면 칼을 들어도 된다"로 읽으면 위험합니다. 이 사건에서 결론을 만든 것은 칼이 아니라, 칼을 든 뒤에 조카가 하지 않은 일들이었습니다. 찌르지 않았고, 다가가지 않았고, 상대가 가위를 내려놓은 뒤에도 추가 위협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경찰을 불렀습니다.

6. 함께 볼 판결 ― 흉기를 소지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하지 못합니다

같은 흐름의 판결이 한 달 앞서 나왔습니다. 이웃에게 폭행당해 머리를 다친 사람이 이후 식칼을 들고 다닌 사건에서, 검찰은 폭력행위처벌법 제7조의 우범자 규정 ― 정당한 이유 없이 폭력범죄에 사용될 우려가 있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 ― 을 적용해 기소했고 원심은 유죄로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했습니다(대법원 2026. 5. 14. 선고 2026도4222 판결). 여기서 '휴대'란 범죄 현장에서 사용할 의도 아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는 것을 말하고, 단순히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범죄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폭행을 당한 뒤에 식칼을 가지고 왔다는 사정만으로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두 판결의 방향은 같습니다. 칼을 들었다는 외형이 곧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위에서, 무슨 의도로, 그 다음에 무엇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실제로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판결이 인정한 정황들을 뒤집어 보면, 그것이 곧 실무적인 조언이 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112 신고입니다 ― 이번 판결에서 조카가 직접 신고한 사실은 '분쟁을 적법한 수단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증거로 정면에서 평가됐습니다. 순서상 먼저 하기 어렵더라도, 가능해진 순간 바로 하십시오.
  • 상대가 물러난 뒤에는 멈추십시오 ― 방어가 정당행위로 평가받는 경계선은 '수동적·소극적'입니다. 상대의 공격이 끝난 뒤의 행동은 새로운 공격으로 평가됩니다.
  • 다친 곳은 그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으십시오 ― 이 사건에서 조카의 3주 상해 진단은 법익균형성 판단의 핵심 사실이었습니다. 며칠 지나 받은 진단서는 인과관계를 다투게 됩니다.
  • 맞은 사람이 피고인이 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 이 사건에서 기소된 사람은 폭행당한 쪽이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내가 먼저 신고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사 전에 사건의 전체 경위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두십시오. 잘려 나온 한 장면으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그 순서가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8. 파기환송의 의미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위법성 조각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관여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 유·무죄의 최종 결론은 환송심에서 가려집니다.

다만 대법원이 "정당행위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서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위라고 평가할 여지가 크다"고까지 밝힌 만큼, 환송심은 이 법리에 따라 다시 판단하게 됩니다.

부당한 공격을 받는 순간에 사람이 완벽하게 절제된 대응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은 그 점을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정이 기록에 제대로 남아 있어야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정당행위·정당방위의 인정 여부는 공격의 경위와 강도, 당사자의 관계, 방어행위의 정도와 그 이후의 행동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므로, 실제 문제가 있다면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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