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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접촉이 없어도 강제추행이 될 수 있습니다 ― 대법원이 본 '폭행'의 실질

혼자 매장을 지키다 주문이 들어오면 잠깐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시던 컵은 옆 테이블에 그대로 둔 채로요. 이 사건에서는 그 짧은 사이에 처음 보는 손님이 카페 운영자가 마시던 컵에 미리 준비해 온 자신의 체액을 몰래 넣었습니다. 손님의 손이 닿은 것은 컵뿐이고, 운영자의 몸에는 단 한 번도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죄일까요. 컵이라는 '물건'에 한 행위를 '사람'에 대한 폭행이라 부를 수 있는지, 나아가 추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대법원은 2026년 7월,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대법원 2026. 7. 9. 선고 2026도2156 판결).

1. '강제'라는 말이 만든 오해 ― 기습추행 법리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할 때 성립합니다. '강제'라는 말 때문에 힘으로 제압하는 장면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법원은 오래전부터 폭행행위 자체가 곧 추행행위인 경우도 강제추행죄에 포함된다고 봐 왔습니다. 이른바 기습추행 법리입니다.

이때의 폭행은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일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물리적인 힘)의 행사가 있으면 충분하고,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합니다. 대법원 2001도2417, 2019도15994 판결로 이어져 온 확립된 기준이며, 이번 판결이 새로 만들어 낸 법리가 아닙니다.

2. 컵에 한 행위인가, 몸에 한 행위인가 ― 외형과 실질

이 사건의 쟁점은 '접촉'이었습니다. 손님이 손을 댄 것은 컵이었고, 운영자의 신체에는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여기서 외형과 실질을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겉으로는 피해자의 물건에 대한 행위로 보이더라도, 그 실질이 피해자로 하여금 체액이 섞인 음료를 마시게 하려는 것이라면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질'을 판단하는 근거는 정황이었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의를 돌리려 디저트를 추가로 주문한 점, 전날 미리 체액을 준비해 둔 점이 그것입니다. 대법원은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 접촉하지 않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3. 무엇을 보고 추행이라 하는가

추행인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지로 판단합니다. 여기에 피해자의 의사, 두 사람의 이전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구체적 양태, 주위의 객관적 상황을 종합해 신중히 결정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정액이 강한 성적 의미를 가지는 체액이자 감염을 매개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타인의 체액을 의사에 반해 체내에 투입시키는 행위는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육체적 고통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피해자는 위세척을 받았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뒤 운영하던 카페를 닫았습니다.

4. 대법원의 결론 ― 파기환송, 그리고 그 의미

대법원의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 행위는 외형상 피해자의 물건에 대한 행위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실질은 피해자로 하여금 체액이 섞인 음료를 마시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라고 평가할 수 있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다면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해당할 수 있으며, 신체에 직접 접촉하지 않았더라도 달리 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체액이 갖는 강한 성적 의미와 이를 타인의 체내에 투입시키는 행위의 성질을 고려하면 추행에도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것이 아닙니다. 1심과 2심은 재물손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 강제추행 부분만 이유에서 무죄(주문이 아니라 판결 이유에서만 무죄로 밝히는 것)로 판단했고, 이에 검사가 상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에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관한 법리오해가 있다고 보았고, 그 이유무죄 부분이 유죄로 인정된 재물손괴와 상상적 경합(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함께 해당하는 관계) 관계에 있어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유·무죄의 최종 결론은 환송심에서 가려집니다.

5.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 그 순간 해야 할 일

  • 컵과 용기를 그대로 보존하세요 ― 씻는 순간 가장 확실한 증거가 사라집니다.
  • CCTV 보존은 그날 안에 요청하세요 ― 저장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덮어쓰입니다.
  •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곧바로 병원에 가세요 ― 진료기록은 피해를 증명하는 가장 단단한 자료가 됩니다.
  • 재물손괴로만 신고하고 끝내지 마세요 ― 물건에 한 일처럼 보여도, 이번 판결처럼 성범죄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손대지 않았다고 법이 손을 놓지는 않습니다. 겪은 일이 그냥 불쾌한 일로 넘어갈 문제인지, 법이 다룰 문제인지는 사실관계를 하나씩 짚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성범죄 사건은 행위 태양, 정황 증거,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므로, 실제 문제가 있다면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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